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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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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첨부파일 이미지 조회수 49184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기계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나는 위스콘신대학 한국인 학생회에서 회장직도 맡고 있다. 유학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유학을 준비했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사실 이곳에서 함께 공부하는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미국유학을 준비했고, 그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곳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 특히 나처럼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석사과정에 진학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나도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렇게 입학허가 받는 것 자체가 어렵다 보니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미국대학의 입학허가를 빨리 받는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유학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는 ‘새로운 세계에서 혼자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마음을 잡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해외 명문대의 입학허가를 빨리 얻기 위해서는 어떤 시험을 준비해야하고, 어떤 유학원을 통해야 하는지, 어떤 교재를 사용해야하는 등등의 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십 년 넘게 살아왔던 한국을 떠나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유학생들이 일단 원하는 곳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만 되면 나머지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실제로 많은 유학생들이 가장 중요한 마음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현지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봐왔다. 우리학교와 IIT(일리노이공대 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와의 *복수학위 프로그램으로 아주대에서 2년을 수학한 후 나머지 2년을 미국의 IIT에서 학창생활을 보낸 만큼 나는 위스콘신대학교의 입학허가를 국내의 다른 대학에서 학부를 마친 학생들 보다 비교적 수월하게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겪는  시행착오를 모두 다 뛰어넘고 지금 이렇게 세계의 인재들과 동등하게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대의 복수학위 제도를 통해 남들보다 비교적 시간을 단축해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지만 남들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남들이 겪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들을 고스란히 겪어냈다. 그런 시행착오들을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몇 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유학을 준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내가 왜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실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만 일단 성공적인 유학생활의 절반은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내 경우는 처음 IIT로 가기로 결정했던 가장 큰 동기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심과 도전이었다. 그런 덕분에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자 늘 분주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그것을 발판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 작은 성공을 일구고, 또 그 성공을 발판삼아 다른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결국 이런 작은 것들이 쌓여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했다. 확고한 동기가 완성되면 그 다음에는 확고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목표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것을 세우는 것이 좋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그 목표를 위한 세부 목표와 과정을 생각하고 그 과정 하나하나를 위해 최선을 다 해 나가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목표를 한 번에 완성할 수는 없지만 유학을 가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부적으로 구상할 수 있는 목표들 즉 ‘토플점수를 얼마나 잘 받겠다, GRE점수를 얼마나 잘 받겠다, 그리고 어떤 학교를 어떻게 지원 하겠다’ 하는 세부 목표들은 보다 짧은 시간에 결과를 볼 수 있는 목표들이다. 이렇게 세부목표들을 조금씩 달성해가면서 가장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유학생활을 시작한다고 해서 무조건 보장된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힘든 생활의 시작이라고 해야 옳다. 유학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 만나는 어려운 점은 바로 문화적인 차이점과 군중 속의 고독이다.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외국인들 속에서 정말 내 마음을 편안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를 찾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언어의 장벽은 그들에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털어 놓는다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복수학위 프로그램으로 IIT에서 함께 공부한 다른 아주대 학생들이 있었고, 성격도 외향적이었던 나도 꽤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은 남의 도움으로 적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고의 작은 전환’ 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처럼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 자신이 바빠지면 그 바쁜 생활을 즐기고, 힘들어지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적응을 하다 보면 어느새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공부이외의 다른 것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새로운 문화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기 보다는 외국인에게서 배우는 사고방식, 말로만 들어왔던 것들을 실제로 보고 느끼면서 얻는 경험들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것들이 앞으로의 인생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모르는 중요한 재산들이기 때문이다. 주위 환경에 대한 적응과 함께 학과공부에서의 적응 역시 중요하다. 대부분의 대학원 과정의 공부는 학부과정의 공부와 달리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부터 출발해야 한다. 특히, 학부를 한국에서 나온 학생들에게는 이런 방식들이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기본 문제의 해석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실력과 함께 주어진 문제를 한 발짝 물러서서 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데 그 기본은 자신감이다. 이런 자신감은 내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냈을 때 더 커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가장 커진다. 그런 면에서 나의 경우는 IIT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IIT에서의 첫 학기에 나는 꽤 많은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IIT에서 공부한 4 학기 중 3학기는 20학점을 넘나드는 과정을 소화해야 했다. 처음 접하는 순수 영어 강의와 매주 나오는 숙제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은 나 자신에게 어쩔 수 없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좋은 성적들과 그것으로 인해 얻은 성취감과 자신감들이 새로운 문제를 한발 짝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열한 느낌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불변의 진리들이 누구나 실천하기는 힘든 것임은 틀림없다. 전 국가대표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지금의 내 모습 그리고 지금의 내 위치는 내가 진정 생각하고 꿈꿔왔던 궁극의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만든 중간 목표들이다. 그 작은 목표를 달성하고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참고 견디는 은근과 끈기는 값진 열매를 맛보기위한 훌륭한 양분이 되어 줄 것이라고 확고히 믿는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다. 그 절대 진리를 굳게 믿으면서 오늘도 나 자신을 더 바쁘게 재촉해본다. 전용호동문은 1995년 기계공학과에 입학해 2003년 아주대학교와 미국 IIT 복수학위를 받았다. 2003년 위스콘신대학에 들어가 2005년 5월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박사과정 중에 있다. *우리학교는 전 세계 31개국 101개의 자매대학교와 활발한 학생교류를 하고 있으며 ISEP(세계 36개국 260개 대학), ASEF(유럽 아시아 25개 대학), HUMAP(아시아 태평양지역 87개 대학)에도 가입되어있다. 지난해 194여명의 학생이 교환학생으로 1학기~1년 동안 파견되어 학점을 취득했고, IIT(일리노이공대)와 뉴욕주립 스토니브룩대학과 협정을 맺은 2+2 복수학위 프로그램으로 40여명의 학생이 두 개 대학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의 명문대에 진학하였다.
자신의 한계를 규정해 본 적 없다 첨부파일 이미지 조회수 54202
50원 한 번 넣고 6시간동안 갤러그 한 사람, 독학으로 익힌 피아노로 쇼팽 곡을 연주하고 독주회까지 연 사람,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10년 동안 이어폰을 꽂고 다녀 귓병이 난 사람, 어느 여름방학 두 달 동안 하루에 한 끼 자장면을 먹으며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던 사람.   그는 과학도들의 선망의 일터 중의 하나인 미국 우주항공국(NASA)에서 일하고 있는 양의혁(67년생) 박사다. 위에 나열한 에피소드들은 양 박사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주대학교 제어계측학과(현 전자공학부)에 입학하여 석․박사과정까지 10년간 원천골 캠퍼스에 머물었던 토종 아주인이다. 현재 그는 정확하게 NASA 산하에 있는 수십 개의 연구소 중 지난 7월 우주탐사선 딥임팩트가 인류최초로 혜성과 충돌하는 우주쇼 연출을 주도한 젯트추진연구소(JPL; Jet Propulsion Laboratory)에 근무하고 있다. 양 박사가 그 곳에서 하는 일은 우주 천체를 관측하기 위한 거대한 반사망원경 제작에 관여되는 프로젝트들이다. “우주너머의 별들을 관측하는 망원경의 렌즈 크기는 보통 30M에서 100M정도의 크기지요. 그 엄청난 크기의 렌즈는 수 천개의 거울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MEMS기술을 적용하여 이 조각들이 관찰자들의 의도대로 일사불란 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포탈사이트에 ‘NASA에 들어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댓글이 ‘국내에서 고등학교는 어디, 대학은 어디 그리고 대학원은 미국에서 공부해야지만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고 하니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NASA에 한국 국적을 가진 시니어매니저는 저 뿐 일거예요. 젯트추진연구소에 5천500여명의 직원이 있는데, 그 중 한국인이 3,40명 정도예요.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한 경우이고, 한국에서 소위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공부를 마치고 박사후 과정으로 일하고 있는 2명이 4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정식연구원이 되지 못할 정도로 경쟁이 심한 곳입니다.”   양 박사는 NASA 입성이 결정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과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동경대 Fujita MEMS Research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던 중 채 1년이 되지 않아 한 국제학회에서 NASA JPL(젯트추진연구소)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헤어진 후 제 이력서를 보냈어요. 아무런 답변이 없더군요. 1년 반 즈음 지나 미국에 직장을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타진하던 차에 NASA에도 다시 연락을 해봤죠. 반갑게 전화를 받으면서 ‘1년 전에 보내준 내 이력이 인상적이었다’며 인터뷰를 주선해주었어요. 여러 차례 전화로 인터뷰도 하고 학회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NASA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신원조회만도 6개월이 걸렸을 겁니다.” 양 박사는 NASA에서 지금의 입지를 다지기까지는 입성보다 더 힘이 들었다 회고했다. 임시연구원으로 시작한 NASA에서의 생활은 1년 뒤 바로 해고에 처할 위기에까지 놓였으나, 100:1의 경쟁률을 제치고 그의 Proposal이 선정되면서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그 이후 계속되는 Proposal 선정으로 2년 만에 정식연구원이 되었다. 그 뒤 그는 프로젝트 능력을 인정을 받아 보통 6년에서 길게 10년 걸려 오르는 시니어매니저를 2년 만에 획득했다.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우선이었겠죠. 또한 나의 능력을 검증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세계에 진입하는데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동안 무척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실력이 중요한거죠.”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대학생활을 뒤돌아보며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지 말고 꿈을 크게 가져라’ ‘목표가 정해지면 포기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부류는 보통 두 종류죠. 공부를 잘하고 연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졸업 후 특별히 하고자 하는 일이 없는 사람, 전 후자였죠. 하지만 내 능력에 한계를 지운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양 박사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양상식(아주대 전자공학부) 교수의 권유로 당시 우리나라에 막 소개된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분야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공부가 재미있어 정신없이 공부’했다는 양 박사는 결국 MEMS 국내 1호박사가 되었고, 이후 자신의 꿈을 세계무대로 옮겨놓았고, 지금도 쉼없이자신의 더 큰 꿈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닮고 싶고 되고 싶은 2005 과학기술인 첨부파일 이미지 조회수 49768
"무식하면 용감하잖아요. 아무 눈치 안보는 당당함도 생기고요." 아주대 수학과 고계원(54) 교수는 자신의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을 엉뚱하게도 ‘무식함’으로 표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학 생활 시절.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지내는 동안 결혼과 출산이라는 두 가지 ‘거사’를 뚝딱 해치웠다.배가 불러 뒤뚱거리며 출산 직전까지 학교를 다닌 그를 보고 친구와 교수가 깜짝 놀랐다. 지금이야 공부하면서 아이를 낳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그가 다닌 수학과에는 13년간 여성 박사가 배출되지 못할 정도로 여학생 숫자가 적었던 때문도 있었다. ○ “원인 분석하고 결과 얻는 수학은 매력적”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민감하게 여겼다면 그렇게 당당하게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 거예요.”그는 이 용기의 근원이 ‘무식한 탓’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마음을 두면 문제가 풀릴 때까지 다른 주변 상황에 개의치 않고 한 가지만 생각하는 집중력이 그가 표현한 ‘무식’의 실체다. 복잡한 현상을 몇 줄의 수식으로 깔끔하게 표현하는 수학적 아름다움은 어쩌면 이런 그의 성향과도 닮았다.고 교수가 수학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교 물리 교사였던 아버지는 어린 그의 호기심을 늘 자극하고 수학적 상상력을 이끌어 주었다. 논리를 따지고 원인을 분석한 후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수학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언니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학문의 길에 들어섰다.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과 경쟁하며 공부하는 과정은 그에게 큰 자극이 됐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학자의 길에 들었다. 120년 전통의 명문 여대인 브린모어대에서 종신직 교수 자리를 받은 것.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조차도 여성 수학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선배 여성 수학자가 눈에 띄지 않으니 후배들이 도전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눈치 안보고 수학이란 한우물만 팠죠1991년 귀국해 아주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동료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선배로서 미미한 역할이라도 실천하겠다는 지극히 단순한 욕심으로 발걸음을 내디뎠어요.”이 발걸음은 10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었다. 2004년 출범한 한국여성수리과학회는 이런 고민과 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다. 그는 초대 회장을 맡아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수학자를 꿈꾸는 후배 여학생들을 위한 역할 모델을 자임하고 나섰다. 수학자로서 또 교육자로서 그가 택한 길은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여고시절 방학이 되면 그는 아버지와 함께 시골에서 야학을 했다. 책상도 없는 학교에서 보릿고개도 넘지 못한 시골의 아이들과 함께 지낸 시간은 ‘소중히 간직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케 했던 계기였다.고 교수는 아버지와 언니 덕분에 쉽게 진로를 선택해 ‘학문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이제 고 교수 덕분에 후배들이 그 기쁨을 누릴 차례다.●고계원 교수는195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수학이 좋아서 오로지 수학과를 지망, 1973년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후 유학길에 올랐다. 1980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84년 미국 브린모어대에 교수로 부임했다. 그곳에서 종신직 교수 자리를 마다하고 1991년 귀국해 현재까지 아주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4년 한국여성수리과학회를 설립, 수학자를 꿈꾸는 여학생들에게 격려가 되고 용기를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청소년에게 한마디인생은 짧은 단막극이 아니다. 골이 있으면 마루가 있게 마련이다. 어느 정도 성취했다고 안주하지 말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출처: 동아일보 2005년 10월 7일
러시아에서 발견한 내 인생의 봄 첨부파일 이미지 조회수 52461
교환학생으로 러시아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러시아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고,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짧은 식견이지만 내가 볼 때 러시아는 곧 큰 시장이 될 것이고, 그만큼 앞으로 러시아어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러시아어를 공부해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러시아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영어 강의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어, 러시아어와 영어를 동시에 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수학중인 학교에 대해 소개한다면? 현재 공부하고 있는 TPU(톰스크공과대학)는 러시아 내에서는 매우 유명한 대학이다. 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톰스크 시의 인구 중 절반은 학생인데, 기숙사 시설이 매우 좋아 다른 나라의 교환학생들도 많은 편이다. 그곳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가? 현재 수강하는 과목은 경영학 전공과목인 경제원론과 투자론, 교양과목으로 러시아 역사, 철학, 러시아어, 그리고 영어를 듣고 있다. 거의 대부분이 러시아어 수업인데, 쉽지 않지만 러시아에서의 실제 생활을 위해 빨리 러시아어를 배우려고 노력중이다.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하고 있는데, 공부하는데 힘든 점은 없는지? 제1 전공은 산업정보 시스템 공학이다. 아주대학교의 열려있는 학부제 운영에 힘입어 부전공을 하게 되었는데, 경영학과는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어서 공부하는데 크게 힘든 점은 없다. 대신 원래 전공에 소홀해지는 것 같아서 약간 아쉬운 감은 있다. 학업 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교환학생으로 오기 전, 산업공학부 소학회인 Archon(아콘)에서 활동했다. 아콘은 비즈니스 컨설팅과 리더쉽을 연구하는 모임인데, 지난해 아콘의 멤버 2명이 장관상을 받았고, 이번 학기에도 큰 활약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내가 수상한 것은 아니지만 선후배들의 활동상이 자랑스럽다.
아주대학교, 자부심의 또다른 이름 첨부파일 이미지 조회수 58546
  아주대학교에 들어오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진로지도 선생님으로부터 학생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학교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수시전형으로 지원했는데, 면접 시험에서 타 대학과 다른 분위기를 느꼈죠. 가족 같은 분위기와 교수님들의 따듯한 격려와 조언이 좋았거든요. 여기에 글로벌 캠퍼스 정책과 영어강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아주대로 마음이 기울어지게 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아주대학교의 2+2 제도에 마음이 많이 끌렸겠어요. 그렇죠. 무엇보다 교환학생처럼 짧은 기간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차분히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거든요. 그리고 아주대학교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의 학위를 동시에 획득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고요. 스토니브룩에 적응하기는 어렵지 않았나요? 아주대학교의 진가는 스토니브룩에 왔을 때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대학교 경영대 교수님들의 영어 강의가 아주 열정적인 것 아시죠? 아주대학교에서 들었던 영어 강의가 스토니브룩 생활의 든든한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영어뿐 아니라 문화적인 장벽을 빨리 넘어서서 좋은 학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아주대의 체계적이고 수준 있는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스토니브룩에서의 4학기 과정을 3학기 만에 마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혹시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글쎄요. 남들보다 정보에 더 귀 기울이고, 미리 준비했던 덕분이 아닐까요? 제가 아주대에 입학할 당시에는 2+2 프로그램, 그러니까 듀얼 디그리(dual degree)프로그램이 일리노이 대학과 공과대학에만 있었어요. 그런데 공대 뿐 아니라 경영대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듀얼 디그리 프로그램이 생길 것이라는 교수님 말씀을 듣게 되었죠. 그것이 SUNY와의 2+2 복수학위제도였고, 1학년 때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차근차근 준비한 덕에 무난히 스토니브룩에 올 수 있었고, 영어 강의에 익숙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공부 이외에도 많은 활동 때문에 바쁘다고 들었어요. 아주대학교에 있을 때에도 언제나 분주하게 생활했던 것 같아요. 경영대학의 전자상거래 학회 MOZALT를 통해 CD를 판매하면서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실생활에 적용시켜볼 수 있었어요. 또, 여성 커리어 개발센터를 통해서 만난 많은 여성 지도자들은 저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경기도 차세대 여성 지도자 육성 캠프와 같은 좋은 교육 프로그램과 여성 다보스 포럼(Davos Forum)이라 불리는 Global Summit of Women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이런 활동들은 Korean Representative 로서 East Asian Common Space Youth Forum과 UNESCO Childrens Performing Arts Festival of East Asia 참가로 이어졌습니다. 또 아주대학교 홍보도우미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스토니브룩에서도 환경 포럼에 Junior Representative로 참가했어요. 지금은 현재 Academic advisor, Student Consultant, Computer Consultant, Stony Brook Cheer Leader로 활동하면서 스토니브룩 경영 대학 사무실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토니브룩에서의 활발한 활동의 결과로 Deans List, Outstanding Academic Achievement Award, Senior Leadership & Service Award, 뉴욕 District 대표로 Zonta Klausman Scholarsihp Award를 수상했고요.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요? 2005년 겨울, 아주대학교와 스토니브룩에서 복수학위를 받은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예요. 현재, 코넬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아놓았지만 아직 어느 학교에 갈지는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졸업 후 대학원에서 부족한 공부를 좀 더 하고, 미국과 한국의 교류에 힘쓰고,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자랑스러운 아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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